미술사학자 존 로크는 마라케쉬에서 연구를 하던 중 일련의 슬라이드를 접한다. 그것은 외젠 들라크로와의 미발표 스케치들로, 작품 속 모델 그라디바에게 이상하게 압도당한다. 더 이상한 것은 그라디바를 연상시키는 신비한 여자를 만난 것만 같은 경험인데, 그녀는 그를 미로 같은 거리로 끌고 다니다 사라지곤 한다. 이러한 혼란감은 고미술품 중개인 아나톨리를 만나면서 가중된다. 존 로크는 그의 시중을 드는 아랍 여인 벨키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나톨리의 연회를 찾게 되고, 거기서 죽음에 이르는 성적 유혹과 맞닥뜨린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이미지에 대한 인상이 상상으로 거듭나서 가시화되는 과정은 영화를 이미지에의 매혹과 그에 대한 글쓰기를 화두로 삼고 있는 영화처럼 보이게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국적인 공간과 신비한 여성을 통해 꿈꿔보는 성적 판타지로 맹렬하게 달려가는 길을 택한다. 누보로망 작가인 알랭 로브 그리예의 감독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