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한 중산층 가정. 가부장적인 홀아비 망 루디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다. 지금 막 결혼식을 올린 막내딸 그레이스는 한창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있지만, 신랑은 무엇 하나 자기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마마보이이며, 시댁은 사사건건 그녀의 일에 간섭한다. 둘째 딸 루데스는 나약하고 무능한 남편 앤디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한 은행 지점장과 부정한 관계를 가진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심장발작을 일으킨다. 그런 그를 돌봐주는 사람은 첫째 딸 제스. 레즈비언인 그녀는 평생 동안 자신의 애정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아버지의 멸시와 구박을 받아왔다. 영화는 ‘바람’, ‘불’, ‘물’ 이라고 이름 붙여진 세 개의 분절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그것은 각각 필리핀어로 초여름을 뜻하는 ‘Kaleldo’, 한여름을 뜻하는 ‘Maleldo’ 그리고 늦여름을 뜻하는 ‘Kauran’과 대구를 이룬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이 가리키듯, <폭염>은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과 상응하는 인생의 부침, 그 지난한 관계의 그물망을 담담한 듯, 촘촘하게 얽어낸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의 풍경이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지극히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