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는 암울했던 시대의 정황을 ‘연쇄살인’ 장르의 관습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의 스페인 버전으로 칭할 수 있다. 1980년대 프랑코 정권 이후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서사는 전형적인 장르의 틀을 차용한다. 형사인 페드로와 후안은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을 탐문한다. 소녀들을 꾀어내는 잘 생긴 청년 퀴니, 파업 중인 공장의 보스 등이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오르는 가운데 잔혹한 살상의 수법에 대한 분노가 비등점으로 솟구친다. 사건의 심부로 다가가면서 외부로 향했던 화살이 탐문자 내부를 겨냥하면서 이 연쇄살인 스토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굴절된다.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감독은 드라마의 흐름을 시청각 이미지의 긴장으로 전환할 줄 아는 불우한 시대상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지만 <습지>는 정치적 메시지에 기대기보다 웰메이드 장르영화로서 매력을 보여준다. 2014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화제 선상에 올랐다. (장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