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끝이 두려워 책의 엔딩부를 읽지 않는 한 여자가 있다. 사랑마저도 끝날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던 그녀에게, 잊지 못할 과거의 사랑을 찾을 기회가 온다. 그 기회조차 외면하려는 그녀를 이끄는 것은 책임감은 강하지만 융통성은 제로인 한 남자. 이 둘이 함께 찾아가는 과거는 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순간들이다. 눈부신 이국의 정취를 풍기는 과거로의 여행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한번쯤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를 포함해 다수의 작사, 극작, 연출을 맡아 이미 뮤지컬계에서는 스타 연출로 알려져 있는 감독의 첫 영화 데뷔작인 작품은 익숙한 소재를 특별한 상황 속에 버무려 영화적인 장면들로 담아내었다. 롱런 중인 뮤지컬에는 뮤지컬만의 매력이 존재하겠지만, 영화는 순진하면서도 고집 세 보이는 임수정과 앞뒤 안 가리는 돌진형이면서도 섬세함을 보여주는 공유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표현한다. 우리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이야기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예상을 크게 배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종착점 혹은 시작점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이야기에 식상해 하지 않으면서 몰입하도록 만든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몰입을 가능케 하는 자연스러운 연출력이다. 연극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하는 법을 충분히 터득한 감독과 물오른 두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자연스러움 바로 그것.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