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알베르트 세라, 2011
알베르트 세라가 연출하는‘텔레비전 시리즈’는 어떤 모습일까, 라는 궁금증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실제 TV용 시리즈는 아니지만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의 전시회‘아 유 레디 포 TV(Are You Ready for TV)?’를 위해 제작된 이 영화의 결과물은 예상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과격하다. 예상한 대로 혹은 예상치 못할 만큼 금욕적인 이 시리즈는 이후 여러 차례 미술계를 급습한 세라의 시도 중 하나로서, 서정시인이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사제인 루이스 데 레온의 저작‘그리스도의 이름들에 대하여’(1586)에 살짝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학자의 정신으로 신비주의적 신앙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최소한 미학의 질서 안에서 초월적인 시각적 사고의 세계를 지성을 통해 구축하는 것이라는 감독 본인의 생각에 가깝게 이를 녹여내고 있다. 여전히 자신의 학문적 연구 분야인 히스패닉 문학에 탐닉하긴 하지만, 이번에 세라는 영화 제작의 세계로 간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들>에서 수상쩍은 제작자들과 한 감독(세라 자신이 연기했으며, 영화 중도에 사라져 버린다)이 화면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한 프로젝트에 대해 벌이는 공허한 토론과 논쟁으로 14부작을 구성함으로써, 영화 제작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 겸 제작진은 (세라의 영화사인) 안데르그라운 필름의‘슈퍼스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이런저런 빈 공간에서 정적이고 미니멀한 토론을 길게 이어가는데, 그 중에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안에서 댄 플래빈 같은 대표적 아티스트들의 작품 옆에서 벌어지는 대화 장면도 있다(세라 자신은 이 미술관 건물을 싫어했지만, 애초의 기획상 이곳에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여기에 라울 월시의 서부극이나 세실 B. 드밀의 대서사극 같은 고전 영화의 긴 클립들이 기묘하게 삽입되어 있다. 심지어 세라의 차기작인 <내 죽음의 이야기> 역시 드라큘라 백작이 미술관 발코니에서 바르셀로나의 스케이트 보더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의 형태로 살짝 등장한다. 미리 알아둘 점 하나. 무릇 예술이 대개 그렇듯, 관객의 인내심을 요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