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하네케의 숨겨진 걸작 중 하나다. 측량사인 K가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다음날엔 그의 조수들이 마을에 당도한다. 성에 속한 마을 사람들은 K의 실체를 궁금해 하고, K는 자신에게 임무를 부여한 성에 가보려 하지만 온갖 시도를 해도 다가갈 수가 없다. 그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 사이를 방황하며 시간을 보낸다.
카프카의 「성」을 옮긴 이 작품은 놀라우리만치 원작에 충실하다. K가 눈 속을 헤매는 장면이나 이곳 저곳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정사를 벌이는 대목은 소설의 한 페이지를 읽는 것처럼 선명하다. 공동체의 모호한 분위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나중에 만들어진 <하얀 리본>의 분위기와 닮아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나온 같은 해에 미하엘 하네케는, 그가 선보인 작품 중 가장 발칙한 영화라 할 수 있는 <퍼니게임>을 만들었다. 텔레비전용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K를 비롯한 주요 배역들이 <퍼니게임>의 주요인물로 캐스팅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가장 흥미를 유발하는 점은 독일, 체코 사이에 놓인 오스트리아 문화가 카프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 작품이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이 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불안해 하는 남자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면, 하네케 감독은 냉소적이고 대담하게 성에 이르지 못하는 한 남자의 운명을 집요함으로 묘사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