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필드’ 생존자로 프랑스에서 성장한 리티 판의 회고적 에세이 영화. 1979년 대량 학살을 피해 프놈펜을 떠났던 개인사가 정체성, 기억, 상흔이라는 테마와 교직된다. 다큐멘터리와 재연극, 아방가르드 필름을 오가는 <추방>은 하나의 범주로 단정하기 어려운 다성적 형식을 띈다. 뉴스릴과 연극, 스톱 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한 데 묶은 이 영화에서 리티 판은 기억과 꿈, 감정을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기술한다. 망명자의 내면적 진술은 크메르 루즈와 캄보디아에서의 기억, 역사를 환기하는 사물들, 판타지를 경유하며 사라지지 않는 경험을 복원하려 한다. 오두막에 거주하는 한 남자의 마른 목소리는 망명자의 감각, 과거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한다. 화초와 사진, 라디오, 수저, 솜털구름 등 기억의 사물들은 외로움과 결핍, 상실감을 가중시킨다. ‘아름답다’고 하기엔 멋쩍은 이 고통의 기록은 새로운 형태의 자서전이자 망명자의 정신적 풍경화이다. [장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