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국의 두 번째 장편영화 <천화>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특이하고 낯선 사랑이야기다. 중년의 여인 이윤정은 치매노인 김문호를 간병 봉사한다. 가끔 기억이 돌아오는 김문호는 이윤정을 상대로 자신이 과거에 겪은 사랑의 전말을 고백한다. 이윤정의 주변에 나타난 또 한 명의 남자 종규는 보헤미안적 기질로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하며 이윤정에게 접근하지만 이내 싱겁게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천화>는 남자라는 동물에 대한 정직한 보고서이자 그런 남자 동물들을 보듬으면서도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하며 삶의 어떤 이상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에 대한 초상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관계의 영속성을 향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개별적 행동들은 우정으로, 배려로, 공동체적 연대의 몸짓으로 이어지지만 그들 관계는 대부분 가차 없이 허망한 이별로 끝난다. 그것이 삶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자 인간들의 모자란 자질 때문임을 가리키면서도 이 영화는 유일하게 여주인공 이윤정에 대해서만은 존경의 태도를 보인다. 이윤정 역을 맡은 이일화의 존엄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