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과 취업준비생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얼마나 가까울까. 영화는 한 샐러리맨의 하루를 조명하면서 시작되는데, 이야기가 도착한 곳은 취업준비생의 밤이다. 낮에서 밤으로 이행하는 동안 지극히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던 공간은 낯설고 기이한 비밀을 간직한 미로가 된다. 그 미로가 오직 주인공을 위해 구조화되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카프카적인 세계관과 유사성을 지닌다. 공간이 뿜어내는 사나운 소용돌이 속에는 남자의 가리고 싶은 과거, 혹은 외면하고 싶은 오늘의 모습이 뒤섞인 채 밀려든다. 이 모든 곤궁히 주인공 스스로 만들어낸 삭막한 내면의 풍광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가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전개되는 무언의 1인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물 관계를 배제한 간결한 구도 속에서 시공간의 변화만으로 능히 이야기를 끌어가는 재능과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현실의 공간에서 SF적인 시공간을 출연시키는 상상력과 이를 책임감 있게 끌어나가는 연출력이 신뢰감을 준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