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화>는 신상옥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례적인 작품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 기지를 축으로 유입된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세속적 가치와 유교적 봉건성 사이에서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의 삶을 거친 화면에 담으며 시대상의 일면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 커플의 이상적인 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최은희는 신상옥의 다른 영화에서 확산된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달리 자기 욕망에 충실한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호소한다. 전형적인 결말은 물질 문명에 맞선 전통적 가치를 승인하는 듯 보이지만, 영화의 주 배경인 기지촌 클럽을 무대로 전시되는 온갖 소비문화의 기호품들은 신구 가치가 충돌하는 1950년대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