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마 아프 클린트를 칸딘스키 ‘이전에’ 존재한 추상화가로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지금껏 미술 역사에서 여성은 주로 아내, 엄마, 딸, 심지어는 매춘부의 초상으로만 그려졌고, 예술가로서 여성의 재능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클린트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끝나던 시기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예술적 여정을 떠났다.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작가에게 ‘추상화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주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가 남긴 방대한 그림과 글을 추적하고 재구성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천착해 온 ‘존재에 대한 사유와 시선’을 깊게 파고든다. 안타깝게도 클린트가 활동한 백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마치 정지 화면을 보는 것처럼 현재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세계관이 과거가 아닌 미래의 빛으로 여전히 이야기되는 이유다. [정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