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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시장 통을 지나 양손 가득 찬거리를 사 들고 와, 저녁 내내 혼자 이것저것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밤 12시다. 자정이 되어서야 모여 앉은 이효종씨 가족의 오늘 저녁식사는 조금은 특별하다. <이효종 씨 가족의 저녁식사>에는 말하자면 반전이 준비되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를 위한 깜짝쇼가 아니다.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그 사이에서 내놓는 한 증명이다. 존재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며 부재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어떤 전통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전통의 재현과 현실의 삶 속에서 배제되어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에피소드와 눈속임을 통해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 안에서의 억압의 정체를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효종 씨가 느끼는 억압의 실체는 동네 놀이터에서 잠깐 빠져드는 환상 속에서도 드러난다. 햇살과 바람을 한껏 느끼며 시소타기에 열중하던 그녀가 갑자기 바닥에 쿵하고 떨어지며 환상에서 깨어나자, 벤치에 놓아두었던 수박과 찬거리는 땅속 깊이 파묻혀져 있다. 그녀를 강박적으로 몰아가는 일상의 하찮은 것들의 억압은 잠깐의 환상을 통해서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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