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은 저만의 비전과 스타일을 가진 감독들을 위한 경합의 장이다. 올해도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영화를 연출한 8명의 신인 감독 작품이 초청되었다.
우선 4명의 여성 감독 작품 중 하나인 모로코 출신 마리암 투자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담>은 아이를 키우며 홀로 사는 중년 여성과 만삭의 미혼모 사이에 일어나는 우정과 연민, 그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역시 장편 데뷔작인 포르투갈 카타리나 바스콘셀루스 감독의 <변신>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품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요소를 섞어 만든 감각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4편의 단편을 만들고 첫 장편영화를 만든 벨기에 조에 비톡 감독의 <점보>는 회전목마에 빠져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주인공 잔이 새로운 놀이기구와 사랑에 빠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출신의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장편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은 국가가 방치한 게토 지역을 배경으로 사회의 편견과 만연한 혐오 속에서도 피어나는 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한편, 장편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중국의 가오 밍 감독이 장편 극영화 데뷔작으로 내놓은 두 번째 작품 <습한 계절>은 습도가 90% 이상으로 올라가 불쾌감마저 느끼게 되는 계절에 벌어지는 네 남녀의 관계에 대한 작품이고, 일본 나카오 히로미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오바케>는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인 동시에 감독 자신의 작업 방식을 소개하는 일종의 이력서이며, ‘영화 만들기에 관한’ 독특한 영화 중 하나다. 루이스 로페스 카라스코 감독의 두 번째 작품 <그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1992년 지역 의회를 불태우는 사건이 벌어져 사회 경제적인 위기를 겪었던 스페인 남부의 산업 도시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바(bar)를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마지막으로 우루과이의 알렉스 피페르노 감독이 만든 장편 데뷔작 <잠수함이 갖고 싶은 소년>은 크루즈 여객선에 있는 숨겨진 비밀의 문을 통해 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신비롭고 몽환적인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 그리고 사람과 놀이기구의 사랑, 영화 만들기에 대한 돌아봄,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까지, 국제경쟁 부문의 영화를 통해 젊은 영화인들의 패기 넘치고 독특한 시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_전진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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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된 125편의 영화에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양극화된 세계 속 극심한 빈곤과 고통, 갑의 횡포와 을과 을의 대립,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등, 이들 영화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이슈였다. <갈매기>는 미투 운동의 기운을 담고 있는 영화다. 가까운 이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거대 담론에 짓눌려 지내던 변방의 존재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노동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여성 문제를 바라본다. 여성에 대한 차별에, 하청 업체에 대한 차별까지 겪게 되는 여성의 당당한 모습을 담았다. <담쟁이>는 성소수자와 가족이라는 주제 안에서 여성을 발견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녀가 이모, 그리고 이모의 파트너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되묻는다. 또 영화는 성소수자의 협소한 삶의 여건을 비춘다. <괴물, 유령, 자유인>도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영화다. 다소 난해하지만 도전적인 영화 언어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신파적 요소나 사회에 대한 고발이 없는 새로운 감수성의 퀴어영화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빈곤 문제 또한 여러 편이 다루고 있는 주제다. <사당동 더하기 33>은 동국대학교 조은 교수가 지난 33년 동안 한 가족의 삶을 추적한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다. 사당동에서 살다 재개발 사업으로 쫓겨나 상계동에 새 둥지를 튼 한 가족을 꾸준히 추적해 온 이 다큐는, <사당동 더하기 22>(2009) 이후 이들 가족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홈리스>는 갓난아이를 양육하는 젊은 커플이 애타게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담았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머물 자리 한 칸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빛과 철>은 어느 밤 벌어진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삶의 한계점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살고 있는 두 여성이 고통의 근원이 상대방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경제적 빈궁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모녀의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비추는 영화로,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때로는 진정한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자질구레한 삶의 흔적들을 통해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감독의 실제 엄마가 등장하는 새로운 시도는 영화에 묘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더스트맨>은 노숙자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예술을 통해 새 삶의 가능성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다. 영화의 주제를 응축하는 ‘먼지 그림’ 또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생각의 여름>은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한 여성의 나날을 그린다. 시작(詩作)을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좌충우돌하면서 한 뼘 자라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_문석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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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영화가 관객에게 특히 힘 있게 호소하는 지점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올해 한국단편경쟁 출품작 역시 ‘지금/여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절박한 현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2020년만의 경향은 꼽자면 단연 여성, 사회적 약자와 사회 안전망, 그리고 미디어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출품한 이들 가운데에는 여성 창작자 비중이 상당히 높았는데, 이를 반영하듯 여성의 시선이 표현된 작품이 다수를 차지했다. 영화가 포착하는 여성의 연령대도 두터워 어린 소녀부터 초로의 은퇴자까지 형편이 각기 다른 여성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었다. 남순아 감독의 <추석 연휴 쉽니다>, 오현도 감독의 <주희에게>, 정연주 감독의 <집나방> 등이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워 삶의 강퍅함을 그린다면, 유준민 감독의 <유통기한>, 조민재, 이나연 감독의 <실>, 유수진 감독의 <드라이빙 스쿨> 등은 일하는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뚜렷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장애를 특수한 상황 혹은 타자의 것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이고 동반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려는 노력, 다시 말해 장애와 인종, 성적지향, 가족 형태 등의 이야기를 ‘윤리적인 태도’로 접근하려는 연출자의 마음가짐이 느껴진 작품이 많았다. 전예진 감독의 <Fanning>, 김율희 감독의 <우리가 꽃들이라면>, 김예원 감독의 <우연히 나쁘게> 등이 사회적 약자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단편영화가 주로 젊은 창작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가 늘었다는 것도 올해 한국단편경쟁 부문 출품작의 특징이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사용자의 감성 혹은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유튜버의 삶에 집중한 서가현 감독의 <아가리 파이터>가 주목할 만하다. 한편, 최근 한국 상업영화계의 서사 트렌드가 SF로 향하는 것과 함께 단편 출품작에서 SF 장르의 수가 늘었다는 것도 특징적이었다. 이 중 김아영 감독의 실험영화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이 흥미로운데, 이 영화는 비주얼적인 새로움뿐 아니라 난민, 이민자에 관한 동시대적 고민을 SF라는 미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밖에도 다수의 출품작이 출산율 저하, 우성 인자에 대한 집착, 세계 멸망의 공포 등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다뤄, 이 시대 젊은 창작자들의 세계 인식을 가늠케 했다.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출품작과 선정작을 다시 곱씹어 보면 결국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다양한 소재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실험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 ‘짧은 시간’이라는 단편의 미학 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관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영화를 통해 동시대를 재평가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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