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 형제는 컴퓨터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시간을 조정해내는 예술가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퍼핏 애니메이션 <악어의 거리>(1986)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들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영화 속 1초를 위해 24번의 분리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2년간 퀘이 형제와 긴밀한 논의를 거쳐 형제의 예술 세계와 장인 정신을 기리는 특별전, ‘퀘이 형제: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을 마련했다.
초현실주의, 독일 표현주의, 동유럽 문학의 영향을 받은 퀘이 형제의 작품은 언뜻 어둡고 비논리적이며 기이하고 때때로 공포스러운 장르영화로 보이지만, 이들의 예술적 야심은 관객이 관습을 온몸으로 부수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선입견을 벗어나는 독창성과 압축적 상징이라는 개념은 이들 영화 속에서 시각적 왜곡으로, 비관습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또 음악을 먼저 작곡하고 촬영과 편집에 임하는 형제의 제작 방식은 영화산업에서 당연시되는 제도적 관행을 거스른다. 일란성 쌍둥이 퀘이 형제는 이처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보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퍼핏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실사와 스톱 모션, 그래픽 등이 혼합된 실험적인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상업 광고,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방송 프로그램, 오페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상들이 퀘이 형제의 손을 거쳐 낯설고도 독특한 그들만의 스타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양상을 다양한 영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체코의 초현실주의 애니메이션 감독 얀 슈반크마예르에 대한 존경과 주세페 아르침볼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1984), 폴란드 유대계 작가 브루노 슐츠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악어의 거리>, 로베르트 발저 원작의 <머리빗>(1991), 스타니스와프 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면>(2010), 우루과이 작가 펠리스베르토 에르난데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신작 <인형의 숨>(2019) 등 퀘이 형제가 영감 받은 예술가에 대한 영화를 포함해 모두 25편의 작품이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된다.
국내에는 제한적으로 소개된 바 있던 다양한 작품을 상영하는 이번 기획은 이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를 병행해 퀘이 형제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에서는 블랙 드로잉 시리즈와 설치 작업을 포함해 퀘이 형제 미장센의 중요 요소이자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미토리움’ 등 데코 100여 점을 공개해 관객에게 경이에 찬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글_문성경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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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는 동시대 영화예술의 대안적 흐름을 소개하고 다양한 담론을 제기해 왔다. 지난해에는 전시와 VR시네마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적인 영화 상영 형식을 탈피하고 예술매체로서 ‘영화의 확장’을 시도한 바 있다. 올해 21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급변하는 미디어 플랫폼 시대에 영화제가 제시할 수 있는 역할과 대안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스페셜 포커스 ‘KBS 콜렉숀: 익숙한 미디어의 낯선 도전’을 기획했다. 작품을 본다는 행위에 집중하기보다 익명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감독과 제작자가 그 작품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함의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 경험’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 기획이다.
<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는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KBS 채널을 통해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다. 관습적인 TV다큐의 상투성을 벗은 이 시리즈 다큐멘터리는, KBS 창립 이래 축적해 온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을 다양한 층위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 각 편의 주제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무게감으로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풍자적 이미지와 기발한 구성으로 돌파해 경쾌함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방송 사고가 아니면 보여지지 않을 방송 송출 전/후의 모습을 공개하고, 사소해서 버려지던 장면을 전면에 드러내며 관객에게 미시사와 거시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또 출연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재배치해 시간을 연결하고 드라마, 예능, 뉴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이미지를 혼합하며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간의 경과 후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이 의미하는 바를 정면으로 마주보고자 하는 사유의 시도는, 이 시리즈의 섬세함과 대담함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김기조 디자이너의 과감한 타이포그래피와 DJ 소울스케이프가 작곡한 레트로 풍의 음악이 함께 만들어내는 각 작품의 ‘스타일’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장기 상영회를 통해 스크린에서 공개될 이번 스페셜 포커스에서는 <모던코리아> 시리즈 제작진을 초대해 작품 준비 과정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 자리는 한국 사회의 실체를 살펴보려는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관객과 제작진이 직접 만나 깊은 층위의 시민 대화를 이끌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글_문성경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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