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2016)에 이은 정형석의 두 번째 장편 <성혜의 나라>는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 스물아홉 여성 성혜의 고단한 일상을 좇는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들어갔으나 성희롱을 당하고 항의가 묵살 당하자 인권위원회에 신고하고 회사를 나온 그는 다른 곳에 취업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파트타임 일들로 생계를 꾸린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는 곧잘 성혜에게 돈 융통을 부탁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성혜의 남자친구는 무능한 데다 눈치도 없다. 사방이 무심한 공기로 차 있는 숨쉬기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견디며 노동하는 성혜의 모습은 별다른 극적 주름이 없는데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후반부 반전을 맞기까지 등장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적 호흡이 사건의 전개 대신 일상적 공간의 감정을 생생하게 살리기 때문이다.
올해 네 번째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모두 한국영화이다. 한국독립영화가 기나긴 동면에 접어들어 새로운 미학적 충격을 주류 영화계에 안기거나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이 바닥을 치고 상승할 수 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동안 한국영화 2편, 외국영화 1편 총 3편으로 제작됐던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는 그 희망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올해에만 특히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에 전부를 거는 모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