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는 표현의 제약이 없다. 실사영화보다 한결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도와, 소재를 자유롭게 우회하는 은유가 가능하다. 비단 독특한 키워드와 상황 전개가 두드러지는 작품에만 국한하는 장점은 아니다. <계란 카레라이스>는 요리의 과정과 완성된 음식을 먹는 일상적 풍경 안에서도 유연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카레를 만드는 순서와 각각의 재료들은 주인공이 늘 쫓기듯 했던 시간들, 집 밖에서 겪었던 사람들의 무례함, 하루 동안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피로감 등과 연결되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작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듯 버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며 느끼는 추상적 심상 역시 구체적인 표현으로 등장한다. 일상 안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쓸쓸한 고독의 순간들.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가만가만 어루만져주는 힘을 발휘한다. (이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