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듯 말 듯한 자막이 주어진다. ‘이것은 세 개의 이야기다. 그중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이며, 나머지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이야기다.’ 이처럼 영화는 몇 겹으로 겹쳐진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화면에는 책을 읽는 희조가 보이고, 죽은 이수와 남자의 이야기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누구의 시점인지 모르는 풍경 이미지가 평행하게 제시된다. 신원 미상의 인물과 목소리는 사건에 대한 단일한 재현을 거부하고, 이야기를 점유하는 시제의 다면적 층위를 환기한다. [김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