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월드시네마' 섹션은 ’영화제 프로그램의 허리‘를 맡고 있는 중추적인 섹션으로 올해도 22편의 작품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이사도라의 아이들>을 만든 프랑스의 다미앙 매니블 감독이 내놓은 신비로움이 돋보이는 신작 극영화 <막달라>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초청되는 마리아노 지나스 감독이 연출한,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클로린도 테스타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클로린도 테스타>가 상영되면서 전주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감독들의 최신작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경제 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에서 불법 환전사업을 통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위험한 노력을 담은 <길거리 환전소>와 군사정권 시절 몰래 사람들을 돕던 한 주부의 이야기를 담은 칠레 작품 <1976>, 사라진 한 여성을 찾아 길을 나서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르헨티나의 <트렌케 라우켄>, 아르헨티나 전원의 어느 대저택에서 가정부로 평생 일하던 인공이 집을 팔지 않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살다가 도시로 나가려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 〈캐슬〉 등 지난 한 해 동안 화제가 되었던 남미 각국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자벨 아자니, 피에르 니니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연기 대결을 펼치며 상류 사회의 위선과 허영, 그리고 거기에 기생하는 인물들을 표현한 <위선의 종말>과 세계 1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에서 아들이 징집되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전쟁터로 자원한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파더 앤 솔저>같은 완성도 높은 프랑스 작품도 상영된다.
뤼미에르 형제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라 시오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에덴 극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라 시오타의 에덴극장>은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라 시오타가 어떻게 ’영화의 성지‘가 되었으며, 또 에덴 극장의 흥망성쇠는 어땠는지, 다르덴 형제가 오늘날의 모습과 함께 우리를 안내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 외에도 그리스의 팔씨름 선수 이야기를 담은 <팔씨름의 모든 것>, 매그넘소속으로 명성을 떨쳤던 독일의 사진작가 토마스 회프커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팬데믹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함께 미국 횡단 여행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토마스 회프커와의 사진여행>, 전쟁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동부 소도시에 전쟁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 생기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상처받은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모습을 담은 <파편들의 집>, 믿음이 강한 아들과 종교를 증오하는 아버지가 함께 떠나는 여행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종교, 개인의 신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폴란드의 <우당탕탕 성지순례>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도 월드시네마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그밖에도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되는 미래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직접 임신을 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SF 영화 <팟 제너레이션>, 70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화제를 낳았던 포르투갈의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도깨비불>,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란의 스릴러 <위드아웃 허> 등등 세계 각국에서초청된 다양한 작품들이 월드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프로그래머 전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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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설된 '동아시아 영화특별전'은 한국, 일본과 중국의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활발한 교류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는 7편의 동아시아 영화가 상영된다.
중국 출신 아내 황 지 감독과 일본 출신 남편 오츠카 류지 감독이 함께 연출한 <돌로 막힌 벽>은 이번 특별전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스튜어디스가 되려는 여자 대학생 린이 갑작스레 임신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이 영화는 중국에 여전히 남아있는 1자녀 정책의 유산과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종의 신성한 영역을 오로지 돈이 우선이 된 현대 자본주의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보여주는 영화.
<레드>,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등을 전주에서 선보인 일본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따로 또 같이>는 코로나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술적 시도다. 스스로 ‘절반의 다큐멘터리'라 부르듯, 미시마 감독은 자신이 아는 배우들에게 어떤 하루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셀프 카메라 앞에서 보여 달라고 주문했고 배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립감, 외로움, 위안감, 희망 등을 털어놓는다. 이는 아직도 남아 있는 슬픔과 고통을 돌아보는 일임과 동시에 한 시대의 생생한 기록이 된다.
중국의 여성감독 바이올렛 두 펑이 만든 <비밀 문자>는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존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여성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중국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남자들이 알아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누슈 Nushu’라는 문자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해왔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자 ’누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두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누슈‘의 역사와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누슈‘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재일동포 김성웅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은 1967년 벌어진 한 살인강도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29년을 감옥에서 지냈던 사쿠라이 쇼지의 삶을 다룬다. 그는 2011년 형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21년에는 민사 재판에서 보상 판결을 받음으로써 억울한 누명을 벗고 궁극의 승리를 거둔 듯 보였지만 말기 암 진단을 받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이 영화는 항상 낙관적인 태도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고난을 헤쳐온 사쿠라이씨의 모습을 따라간다.
중국 여성감독 리 쥬에 감독의 <양쯔의 혼돈>은 이혼 가정 문제를 아이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정 드라마다. 열 살짜리 소녀 양쯔는 이혼한 엄마의 일기를 훔쳐보다가 엄마가 왜 자신을 버렸는지 알게 되고 상처받는다. 엄마는 양쯔와 소통을 원하지 않지만, 할머니의 환갑을 맞아 서로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다. 이혼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현대 중국의 사회문제를 그린 작품이다.
<노이즈>, <전부 내 잘못> 등의 일본 마츠모토 유사쿠 감독의 <위니>는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프트웨어 ‘위니'를 둘러싼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 미국의 ‘냅스터’, 한국의 ‘소리바다'와 마찬가지로 위니 또한 특정한 서버 없이 개인과 개인이 파일을 공유하는 P2P 방식 소프트웨어로, 개발자인 가네코 이사무가 공개했을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업계와 정부는 위니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수단이라며 가네코를 고발했고 이후 법적 싸움이 벌어진다. 이 영화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를 가네코라는 비범한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중국 마설 감독의 데뷔작 <화이트 리버>는 여성감독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에로틱 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베이징의 ‘베드 타운'인 도시 얀자오에 살아가는 여성 양 판이 이 영화의 주인공. 코로나 사태로 베이징 출입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황 속에서 관음증에 취한 남편과 살아가는 양 판의 억눌린 성적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분위기로 가득한 이 영화는 여성적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보여주며 독창적인 유머 감각도 드러낸다.
프로그래머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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