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의 월드시네마 섹션은 올해부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나뉘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다양한 장르의 극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월드시네마 극영화’는 영화제 섹션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25편의 장편영화로 구성돼 있어 마치 전주의 화려한 한정식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맛’으로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기억과 치유에 대한 작은 명상록 같은 작품 <오로슬란>, 열세 살 소년과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성장과 치유의 여행을 담은 아르헨티나 작품 <블라인드>,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한 지주의 집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를 보여주는 루마니아 영화 <말름크로그>, 갑자기 청력을 잃게 되는 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겪고 이겨내야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사운드 오브 메탈>, 삼십 대에 접어든 단짝 크리스티나와 수잔나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하게 된다는 칠레 영화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일곱 명의 핀란드 여성 감독들이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불평등한 시선들이 난무하는 현실에 맞서며 만든 작품 <관습의 폭력성> 등, 우리에게 생각할거리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작품이 다수 포진해 있다.
연극적인 느낌이 짙은 <끝없는 밤>은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정권에 고통받던 갈리시아 사람들을 묘사한 셀소 페레이로의 동명 시와 당시의 연극, 회고록, 서신 일부를 발췌해 대사로 만든 작품이며, 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의 동명 시에서 영감을 얻은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는 죽음을 계기로 재발견한 ‘사랑의 힘’을 그린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합작영화 <이사벨라>는 셰익스피어 고전 속 인물을 매개로 동시대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해 온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 외에도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국 작품 <미끼>, 사랑 혹은 우정을 다룬 두 편의 미국영화 <웨이브스>와 <이 죽일 놈의 우정>, 그리고 존 카사베츠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고 있는 캐나다 카직 라드완스키 감독의 <13,000 피트의 앤>과, 역시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준 <MS 슬라빅 7>, 브라질의 <바쿠라우>와 2019년 선댄스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알레한드로 란데스 감독의 <모노스>가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을 채우고 있는 화제작들이다.
한편, 다양한 아시아영화들도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에서 상영된다.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열린 1970년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나오미’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미친 사랑>을 비롯해, <비디오포비아> <용서 받은 아이들> <아이들을 잊지 마>까지 모두 4편의 일본영화가 소개된다. 낚시를 좋아하는 무명 배우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영화 <바다 위의 트로피>와 <그녀 방의 구름>(홍콩 공동제작), 그리고 홍콩의 <질식할 것 같은 추억>과 싱가포르, 대만의 합작영화 <웻 시즌>, 인도의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도 아시아영화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글_전진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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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첫선을 보이게 되는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섹션은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들로 꾸며져 있다.
우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시 프로그램과 함께 스페셜 포커스로 기획된 ‘퀘이 형제: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을 기념해 퀘이 형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체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 얀 슈반크마예르의 삶과 예술을 담은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퀘이 형제 특별전과 함께 관객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편 <거미여인의 키스>로 일약 브라질을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고,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난 헥터 바벤코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헥터 바벤코: 내가 죽으면>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두 영화 모두 거장의 매력을 짙게 확인할 수 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훨씬 앞서 추상회화의 길을 열었던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에 대한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과 캐나다 출신으로 밥 딜런의 백 밴드를 거쳐 컨트리 록의 선구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더 밴드’의 리더, 로비 로버트슨이 회고하는 록의 시대를 담은 <로비 로버트슨과 더 밴드의 신화>, 그리고 가수이자 시인, 배우이자 작가로 1970년대 후반 뉴욕의 ‘노 웨이브’ 신에서 종횡무진 활동했던 아티스트 리디아 런치의 모습을 담은 <리디아 런치 -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음악, 미술 분야 예술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상영된다.
그런가 하면 2014년 ‘마약과의 전쟁’ 상황에서 학생들이 경찰로부터 공격을 받고 43명이 실종된 사건을 바탕으로 멕시코의 혼돈스런 정치 상황과 실종자 문제를 다룬 <살아 있는 자>와 1941년 1만 명 이상 사망했던 루마니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열차의 출구>, 그리고 1953년 3월 5일,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세상을 떠나고 3일 동안의 국장 기간을 기록한 <위대한 작별>까지, 정치와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이자 예술가 에릭 보들레르가 파리에 있는 도라 마르 중학교의 영화 동아리와 4년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기록한 <드라마틱 필름>,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려는 한 여성에 대한 칠레 다큐멘터리 <할리퀸>, 그리고 모스크바 주변을 떠도는 유기견들의 모습을 개의 관점에서 담아내고자 한 독특한 다큐멘터리 <우주에서 온 개들>까지 11편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이 소개된다.
글_전진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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