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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참을 수 없는 우리의 가벼움
2021-05-08 10:00:00Hits 340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참을 수 없는 우리의 가벼움
: 국제경쟁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친구들과 이방인들> 제임스 본 감독



<친구들과 이방인들>은 갈증에의 갈증을 느낀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감각을 잃은, 어쩌면 그게 어떤 건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중상류층 밀레니얼 세대가 이 영화의 연구대상이다. 제임스 본 감독은 호주 북부 출신의 자신과 또래들을 이 영화적 실험 공간에 초대했다. 그들을 대표해 창조된 캐릭터 레이는 친구라기엔 은밀하고 연인이라기엔 부담스러운 앨리스와 캠핑을 가고, 업무라기엔 비전문적이고 경험이라기엔 조건을 따지게 되는 결혼식 비디오 촬영 에 나선다. 한 편의 백일몽 같은 이 영화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으로 영예를 안은 제임스 본 감독은 “영화가 너무 서구적인, 호주만의 상황을 그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시아의 한국 관객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결되었다니 기쁘다”고 화답했다.


▲제임스 본 감독


영화 속 호주 중상류층 밀레니얼의 초상을 보며 한국의 그들이 함께 떠올랐다. 어설픈 관계와 불투명한 진로 때문에 헤매는 인물들이 매우 보편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처음엔 계급이나 세대, 국적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그저 내가 사는 작은 세계를 떠올렸다. 스물다섯에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를 만든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지 못해 길을 잃은 것 같고 무료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내 주변 또래들도 나와 비슷한 권태를 느끼고 있더라. 게다가 나를 포함해 시드니 북부에 거주하며 사립학교를 나온 대졸자들은 빈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언뜻 성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비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요즘 호주 영화에는 범죄나 갱단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은데 젊은 중상류층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잘 다뤄지지 않으니 그 계급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는 주인공 레이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런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는 그를 “너무 진지한 애”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를 예의 없다고 나무란다. 레이를 어떻게 묘사하고 싶었나.
원래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다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내가 훨씬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 한 명을 파고들자는 생각으로 레이를 중심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애초에 관객이 이 캐릭터의 내면에 정확히 접근할 수 없길 바랐다. 투명하기보다 흐릿한 인물에게서 모순이 암시되고, 예상치 못한 코미디가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뿐만 아니라 앨리스가 레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도 관객은 잘 알 수 없다. 실제 우리의 관계도 그렇지 않나. 서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유추해가며 반응하기 마련이다.


결정적 사건 없이 흘러가는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대사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영양가 없는 잡담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인생이나 현대예술에 대한 은유로 들릴 때가 있다.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오직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쓰면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영화를 개발하는 편이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난센스, 이상한 뉘앙스로부터 생기는 유머를 굉장히 좋아한다. 의미 없는 얘기를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미학이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면서 단순히 부유한 지위를 누리기 위한 형태로 예술가를 후원하고 자선사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 예술이 시대적 배경과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일종의 사치나 취향 정도로만 소비되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물들의 단절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상한 조화를 이룬다. 인물들은 어긋나는데 숲과 바다의 풍광은 빛나니 오히려 슬프기까지 했다. 풍경을 계속해서 보여준 이유가 있다면.
이것도 하나의 난센스다. 호주는 식민지 문화를 가졌다. 원주민 고유의 문화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이는 호주 사람들에게 불편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산만하게 유흥을 즐기면서 이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우리가 진짜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단절을 영화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독특한 형식과 대화의 연속으로 인해 몇몇 선배 감독의 스타일이 연상된다.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은 “이 영화가 ‘매너의 코미디’라는 측면에서 에릭 로메르 작품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단절된 듯한 에피소드에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구조를 가졌다는 면에서 홍상수 영화와 더 깊이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이 궁금하다.
<친구들과 이방인들>이 중상류층이 등장하는 코미디라는 점에서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과 비슷한 결을 가지긴 했지만, 로메르 영화에서와 달리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 관심도 없고, 이에 대해 유창하게 말할 줄도 모른다. (웃음) 오히려 자크 리베트 영화의 인물들이 나누는 의미 없는 대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홍상수 감독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그가 촬영 전 아침에 대본을 쓴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본 적이 있다. 나는 대본을 제대로 쓰려면 3년은 걸리는데, 그런 작업방식을 택해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것이 놀랍다. 그 밖에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미구엘 고메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샹탈 애커만, 마그라트 뒤라스 등 여러 이름이 떠오른다.


바닷가에서 잠들었던 레이먼드를 어머니가 깨우면서 영화가 끝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레이먼드의 꿈이었는지 아니면 잠시 잠들었던 건지 궁금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어떤 결말로 읽히길 바라나.
고백할 게 있다. 원래 잠든 레이가 꾸는 미친 꿈의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걸 다 걷어냈다. 조금 느끼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말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웃음) 내가 가진 이야기에 큰 구멍이 있다면 그 구멍은 관객이 채워나가면 된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리면 잠이나 자자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나. 레이는 어쩌면 그저 머리를 비우려고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관객이 마음껏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남선우·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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