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과거 화려했던 잉카문명을 이끌었던 다수의 인디오들이 아니라, 12퍼센트에 불과한 백인이 정치, 경제의 실권을 가지고 있는 페루. 스페인어로 ‘천국’을 뜻하는 파라이소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는 페루 아야쿠초의 마을은 황막하기 그지없다. 가난과 폭력의 상처로 얼룩진 10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이 뿜어내는 영화적 힘은 바로 이렇게 묘사되는 공간과 인간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다. 물기 하나 없이 황량한 사막과 폐허로 변해버린 고대의 유적은 불투명한 미래와 과거의 상흔으로 힘겨운 그들의 삶을 대변해주지만, 유일하게 살아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순수한 젊음이 자라며, 보물이 묻혀있다는 과거의 전설처럼 소중한 그들의 꿈이 있다. 영화의 시선은 내내 절제되어 있어,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도 흐뭇한 웃음이 있고 풀어헤쳐진 감정이 아님에도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화면상에 어떠한 아름다운 것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깊은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