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던 <우리가 사랑하는 팔월>(2008)이 새로운 재능의 출현을 알린 작품이었다면,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타부>는 미겔 고미스야말로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하나임을 입증한 작품이라 하겠다. 장편데뷔작 <당신에게 어울리는 얼굴>(2004)을 비롯한 그의 모든 영화는, 작품 내에서 스타일 및 내러티브 상의 변화가 (서서히, 때로는 별안간) 일어나 결과적으로 범주화가 불가능한 성격의 것이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변신하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 한편으론 <타부>에서 강하게 엿보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성과 텍스처에 대한 관심은 라야 마틴의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 특히 아동용 동화책에서 올드 팝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적 산물을 끌어들여 참신하고 유머러스하게 활용하는 것은 그의 장기 가운데 하나다. 19세기의 한 포르투갈 탐험가에 관한 짧은 크레딧 시퀀스를 제외하면, <타부>는 (F.W.무르나우의 동명영화(1931)를 느슨히 환기시키려는 듯) 현재의 리스본을 무대로 한 1부(´실락원´)와 50여 년 전의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2부(´낙원´)으로 나뉜 영화다. 영화 전체가 흑백 표준화면 사이즈(1부는 35mm, 2부는 16mm)로 촬영되었고, 2부는 내레이션과 삽입곡 가사를 제외한 모든 음성이 소거된 대신 일부 음향만이 들리는 독특한 무성영화적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내러티브 구조나 몇몇 영화적 요소를 고려할 때 - 영화를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각 소제목을 붙인 것,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의 통제 하에 놓인 집에 거주하는 다른 인물(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악어 - <타부>는 일견 <당신에게 어울리는 얼굴>과 가까워 보이지만, 그의 첫 장편에선 기상천외한 내러티브를 향한 열망이 좀 과시적으로 느껴졌던 반면 <타부>의 고미스는 식민 시기 아프리카에서의 로맨스라는 전형적 이야기를 취해 이를 영화적으로 색다르게 프레임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미스는 음악을 탁월하게 활용할 뿐만 아니라 영화를 음악적으로 구성하는 데도 능한 감독인데, 가령 식민시기 아프리카에서 결성된 허구의 밴드에 관한 에피소드는 로맨스의 감상성과 대조를 이루는 기벽 가득한 서브플롯이자 코믹 릴리프처럼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