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비의 직업은 공과금이 밀린 사람들의 수도를 끊는 것이다. 더 많은 수도를 끓을수록 더 많은 수당을 받는 그는 마을 사람들에겐 악당이나 다름없다. 그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수도공급 중단을 고지하는 경고장을 주민에게 직접 사인 받을 때. “내가 사인 안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라며 주민들은 사인을 거부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도 개비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수도를 끊고 또 끊으며 가장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 고군분투 한다. <수도 끊는 남자>는 끼니의 문제로 악역을 자처할 수 밖에 없는 남자의 긴 한숨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모셰 이브기의 과묵한 모놀로그로 지탱되던 드라마는 개비가 일자리를 잃으며 이스라엘 공공사업의 폐단과 정치에 관한 알레고리로 확장된다. 개비의 상사는 선거가 코앞이니 민심을 잡기 위해 두 달 동안 수도 끊지 말라고 명령한다. 정부의 손이 되어 사람들의 젖줄을 끊던 개비의 용도도 기한이 다 한 것이다. 영화 속 이스라엘은 유령도시처럼 보인다. 제4차 중동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고층아파트가 즐비하지만 거리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거실엔 서구의 가구와 가전용품이 가득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수도세를 내지 못한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의 아픔은 고스란히 하층민에게 돌아갔다. 물을 둘러싼 이 우화는 가난한 자들이 시스템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한정된 물자를 가난한 자들에게 공급한 후 가난한 자들끼리 아귀다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