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너무나 익숙한 소재와 문법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자폐적 고독과 소외. 그 지독한 건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맑은 영화. 할리우드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열대의 땅, 베트남은 이 영화 속에서 더 이상 이데올로기와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선전선동의 땅이 아니다. <잃어버린 계곡>은 전반적으로 계몽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고전적인 드라마이지만, 계몽의 절대적인 아우라에 천착하는, 융통성 없고 고집스런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이해에 그 근저를 두는 서정적이고 투명한 한편의 시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이다. 외딴 고산 마을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세 사람 즉, 교장 선생님이면서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탄´, 젊고 아름다운 선생님 ´지아오´, 그리고 ´민´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들에게 이 생활은 희생이라기보다는 살아가는 이유 같은 것이며, 그래서 그 자체로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아오´가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면에 억눌러온 욕망을 발견하고는 괴로워하게 되면서 학교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주인공이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와 배경 음악, 직접 출연하는 현지 고산족 등 우리에겐 다소 생경한 베트남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이 영화는 막 기지개를 켜는 어린 아이처럼 변증법적 계몽의 새로운 관계를 찾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자신들을 눌러왔던 탈계몽의 공포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