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대만 영화의 정체성의 근간 가운데 하나는 친밀한 삶의 세계를 향한 성찰이랄 수 있다. 에드워드 양과 허우 샤오시엔 그리고 차이밍 량에 이르는 대만 영화의 새로운 물결은 언제나 친밀한 삶의 세계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대만의 독립영화감독 홍홍의 신작 <인간희극> 역시 그로부터 멀지 않다. <인간희극>은 중국의 고전 교훈담 가운데 하나인 <24가지 효행에 관한 책>의 일화를 인용하며 4개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홍콩의 배우 양조위만을 생각하며 불구적인 생활을 살던 어느 신발가게의 여점원, 시골의 홀어머니를 떠나 유학을 떠났지만 전위연극의 배우가 되어 있는 어느 청년 대학생,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비좁은 아파트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새 아파트를 찾아 나선 젊은 여성 직장인 그리고 자신의 전처에 여전히 묶여있는 처량한 중년의 부동산중개인, 이 네 명의 인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된 채 지금 여기 타이페이를 살아가는 이들이 세계를 교직한다. <인간희극>이란 제목이 가리키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이 발랄하고 경쾌한 코미디이길 기대해선 곤란하다. 외려 웃음을 머금은 깨달음이라 해야 옳을 이야기들을 통해 감독은 평범한 허식적 관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관계의 진실을 발견하는 이들의 행로를 가리킨다. 그의 전력이 알려주듯 섬세한 시나리오를 통해 홍홍 감독은 다양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세계를 억지스럽지 않게 연결시킨다. 감독 홍홍은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연극평론가로 대만에서 널리 알려진 르네상스 맨. <인간희극>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상영된 바 있는 <세 오렌지의 사랑>에 뒤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