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태국 영화 가운데는 의외로 대중성 못지않게 독특한 형식을 제시하는 작품들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 출신인 밍몽콜 감독은 방콕에서 출발해 북동부의 척박한 지역 이산으로 가는 미니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 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감상 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장면을 창조한다. 8명뿐인 승객들의 실제 삶은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거나 구체적으로 지시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라디오에서 드라마가 흘러나오자 여주인공의 대사를 시작으로 태국인들이 즐겨본다는 ´소프 오페라´의 배역을 연기한다. 남녀의 로맨스와 복수, 몰락과 되찾은 행복이라는 진부한 플롯으로 구성되는 ´소프 오페라´는 보름밤을 새며 길을 달리는 그들이 현실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하는데 현실과 비현실과의 시각적 정보는 모순되지만 대사는 실제 드라마를 그대로 따르듯 성우의 더빙된 목소리로 진행된다. 정차하면 현실로 돌아오고 시동을 걸면 다시 마법에 빠지는 이상한 버스가 아침 무렵 이산에 도착하면 그들이 다시 마주해야 하는 세계는 돈과 범죄, 타협과 자기기만이라는 얼룩진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의 초라한 판타지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당한 소외된 주체의 효과로 읽는 시선을 잠시 유보하고 태국 하층계급의 존재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현실과 비현실 간의 긴장, 연극적인 요소와 영화적인 요소의 조화에 의해 탄생된 동전의 양면 격인 미니버스 안팎의 작은 세계는 분명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