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불안한 확신, 자신에게 알려진 삶의 세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감춰진 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이런 무의식적 강박관념이야말로 최근 일본 영화가 가장 집착하여 온 주제인지도 모른다. 근년의 호러나 스릴러 같은 장르 영화를 통해 집요하게 반복되어온 이러한 주제는 나가사키 슈니치의 신작 <고요한 곳>에서도 변주된 다. 카스미는 행방불명된 딸 유카를 찾아 매년 홋카이도를 찾는다. 그녀는 몇 해 전 남편과 남편의 고객인 한 부부와 함께 여행을 왔던 홋카이도에서 그녀의 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실종된 유카를 찾으려는 노력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유카를 찾으려는 그녀의 노력은 아무망해 보일 뿐이고, 남편마저 딸을 찾으려는 일에서 물러서려 한다. 그리고 홋카이도 어딘가에 딸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확신과 집착은 이제 단 하나 전직 형사이며 위암으로 곧 죽을 처지에 놓인 우츠미의 도움과 함께 할 뿐이다. 딸이 실종된 5년째 되는 해 그와 함께 홋카이도를 찾은 카스미의 행적과 더불어 그녀의 숨겨진 환상과 비밀이 하나 둘씩 출현한다. 감독 나가사키 슈니치는 <고요한 곳>을 통해 더없이 친밀한 가족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비추는 티비 드라마의 화면을 지극히 그로테스크한 세계로 뒤 바꾼다. 디지털 카메라가 빚어내는 기묘한 현실감과 아울러 그 현실감을 배반하는 기괴함이 한데 뒤섞이며,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야 만다. 딸의 실종을 자신의 불륜과 가출 그리고 원인 모를 죄책감과 연계시키는 엄마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윤리적 악몽 속에서 우리는 근년 일본 영화 가운데 가장 출중한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