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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경쟁

Korean Competition for Shorts

말년의 오슨 웰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미국이 간직한 젊음에 대한 집착과 강박을 이야기한 적 있다. "미국은 젊은 국가이며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것이라 믿는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젊음이 끝난 뒤의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연기와 연출을 겸한 데뷔작 <시민 케인>(1941)부터 26살의 나이로 노년의 삶을 연기한 웰스는 오직 젊음만을 찬양하는 할리우드의 생태를 교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웰스와 동갑으로 그가 <시민 케인>을 완성하던 해에 폐결핵이 재발해 젊음의 많은 시간을 요양원에서 보낸 롤랑 바르트는 노년에 영화관에 간 경험을 일기에 적으며 흥미로운 불평을 늘어놓는다. "영화관을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영화가 하나도 없거나, 이거다 싶은 영화는 이미 시작한 뒤였다. 그러다 보니 피알라 감독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치르는 또래의 십 대들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 이 영화에는 일종의 젊음을 우대하는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이 있었다. (나 같은 나이 든 관객은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느닷없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2026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에는 1,494편의 영화가 출품되었다.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출품된 영화들이 품은 다양한 개성과 매력적인 만듦새에 깊은 흥미를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단편영화에 담긴 모종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주로 영화학교 내부와 그 주변, 혹은 대안적 영화 만들기 수업이나 워크숍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들은 젊은 세대가 마주한 젊은이들의 고민과 젊은 감수성을 쉽게 반영한다. 하지만 오슨 웰스의 반문처럼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젊음이 끝난 뒤에 이어지는 생애 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은 롤랑 바르트의 불평처럼 한국 단편영화가 젊음만을 우대하고 늙음을 배척하는 종차별적 문화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까? 조금 거슬리는 얘기일지라도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는 단편영화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비평적 글쓰기와 시네필 공동체 모두 젊은이들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나이가 드는 순간 그 장소에서 추방당하곤 하는 한국 영화문화 전반을 향한 반성적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편영화의 젊음은 영화 안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가족과 학교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한 인물, 무기력하고 연약한 자아와 목소리,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서사가 오늘날의 젊음을 표상하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젊은 단편영화는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만들려고 하는 이 영화가 영화제나 지원사업의 공감을 얻지 못할까 봐,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카메라가 담아낸 캐릭터와 장면이 누군가의 감수성을 거슬리게 할까 봐 공들여 조율하고 정돈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단편영화가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불안정한 창구가 아니라 점점 더 소수의 (젊은) 향유자끼리 합의된 신호와 표현양식을 주고받는 폐쇄적 유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단편영화는 기승전결에 맞춰 깔끔하게 만들어진 서사를 들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적당히 공감받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공유하는 장소도 기술적 완성도를 뽐내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장소도 아니다. "그럼 대체 무슨 장소인가?"라고 되묻는다면 아직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 다만 아직 알 수 없는 세계의 표정과 질감을 발견하는 매개로서 기능한 멋진 단편영화의 몇몇 사례들을 기억할 뿐이다. 자족적인 즐거움에서 머무르지 않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탐험하고 돌파하며 그 바깥을 상상케 하는 작업들이 선정되었다.
예년과 비교하면 올해 출품작에는 유독 어린아이와 학생 들이 나오는 영화가 많았다. 카메라를 들고 눈앞에 주어진 세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보려는 영화 또한 여전히 많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특정 연출자의 영향이 느껴지는 단편영화는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다는 인상이다. 이제 젊은 단편영화 제작자들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채 어떤 바깥의 영역으로도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통과한 과거와 직면해 있는 현재를 갉아먹는 것일까? 이것이 그들의 위축된 세계를 감추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장치를 활용한 결과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젊음'에 안주하는 대신 그 이후와 바깥을 상상하는 영화들과 불편하게 공존하는 단편영화 생태를 떠올려 본다. (한국단편경쟁 예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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