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윤정은 30년 전 사랑했던 남자를 여전히 꿈속에서 만난다. 그는 이제 생과 사의 경계에 머무는 흐릿한 존재다. 20대 이도는 예술과 삶의 의미를 찾으며 방황하고, 곁의 로아 역시 손이 닿지 않는 환영처럼 맴돈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윤정과 이도의 이야기는 점차 하나로 겹쳐지며 기억과 욕망,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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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에 관하여>는 김남조 시인의 대표작에서 제목만 공유하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같은 시의 내용까지 영화로 옮긴 듯 보인다. 영화는 어느 날 50대 여성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30년 전 히말라야에서 실종됐던 애인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병원에서 확인한 그의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시점, 그와 똑같이 생긴 젊은 남성이 등장한다. 이도라는 이름의 청년은 바에서 만난 가수 로아에게 반해 집착하고 매달린다. 여기에 바를 운영하는 명주를 비롯해 영화배우, 영화감독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김남조 시인은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하는 일/ 이런 일 허망이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정교하게 짚어낸 것이리라. <허망에 관하여>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일지도 모를 허망과 사랑, 그리고 꿈과 현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랜만에 영화 주인공을 맡은 문희경의 원숙한 연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 영화에는 1971년 크리스마스 아침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민병무, 방희준이 만들고 불렀던 '젊은 연인들', '그 무얼 찾아', '캄캄한 어둠' 같은 노래가 다양한 버전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듣는 마음은 수십 년 만에 히말라야에서 나타난 시신을 만난 듯 멈춰진 젊음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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