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리안시네마’ 부문에는 다큐멘터리가 유독 많이 포진해 있다. <여파>는 EBS에서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를 만들다 2013년 회사로부터 제작 중단 명령을 받고 퇴사한 김진혁 감독의 작품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김 감독은 과거 취재했던 반민특위 관련자들을 만나며 다시 영화를 재구성한다. 우광훈 감독의 <직지루트; 테라 인코그니타>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에 소개되었던 <직지코드>(2017)의 속편인 셈이다. 전작에 이어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고려의 직지를 모방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제작진의 모습을 담았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2006)을 만들었던 김덕철 감독의 <백년가족>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진 다큐멘터리다. 일본 가와사키 한인들의 민족 교육 운동에서부터 헤이트 스피치 반대 투쟁까지, 일본 정부의 핍박을 극복해 온 한인들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늦봄2020>은 문익환 목사의 일대기를 그리는 다큐멘터리. 친구 윤동주, 송몽규를 잃은 아픈 기억부터 1989년 방북까지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여 준다. 문 목사의 음성을 AI로 복원해 들려줘 더욱 뜨거운 인상을 남긴다. <호수길>(2009)로 큰 주목을 받았던 정재훈 감독의 <Trans-Continental-Railway>는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적 서술이 엿보이는 실험영화 혹은 뮤직비디오다. 록 밴드 유기농맥주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격렬한 사운드에 기록 영상을 조합한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자주 찾아왔던 ‘단골 감독’들의 신작 또한 소개된다. <시선사이>(2016)와 <roooom>(2018)으로 전주를 찾았던 최익환 감독의 <마이썬>은 장애인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극 「킬 미 나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로 주연 장현성은 밀라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델타 보이즈>(2016)로 한국경쟁 대상을 받은 이후 꾸준히 전주를 찾고 있는 고봉수 감독도 신작을 내놓았다. <습도다소높음>은 더운 여름날 열리는 영화 시사회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웃픈’ 이야기를 보여 준다. ‘고봉수 사단’ 배우 외에도 이희준이 출연한다. <내가 사는 세상>(2018)과 <파도를 걷는 소년>(2019)을 연이어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시켰던 최창환 감독의 신작도 소개된다. <식물카페, 온정>은 식물들을 분양하고 치료하는 카페에서 사장과 손님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식물에 빗대 설명하는 이 영화는 아날로그적 정서로 쓴 ‘인생을 위한 식물도감’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최진영 감독은 ‘한국단편경쟁’ 상영작 <연희동>(2018)으로 한 번 전주를 찾았지만, 계속 전주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춘희가 벼락을 맞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는 이야기로, 전주 곳곳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신예 감독의 데뷔작도 선보인다. 양윤모 감독의 <튤립 모양>은 기이한 사랑 이야기다.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를 찾아 무작정 한국으로 온 일본 여성 유리코와, 일본 고전영화 속 배우를 흠모하다 유리코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한 한국 남성 석영이 재회하는 과정을 담았다. <창밖은 겨울>은 영화를 만들다 포기한 뒤 버스 기사가 된 남성이 한 여성을 알게 되면서 변화하는 내면을 그린다. 아이돌 출신 한선화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말아>는 외부 관계를 차단한 채 집밖으로 나서지 않던 주인공이 엄마가 운영하던 김밥집을 임시로 맡아야 하는 상황을 포착한다. 주연배우 심달기를 통해 소소하지만 섬세한 인물들의 내면이 비쳐진다. 각기 다른 색을 뽐내는 단편영화 11편도 주목해 주길 바란다.
(문석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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