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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한 한국경쟁 부문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팬데믹이 3년이나 지속되면서 영화들의 분위기도 변화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영화 흐름이 사회 부정의와 모순 등 외부 세계에 관심을 쏟는 방향으로 향했다면 최근엔 가족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처럼 내적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바뀐 듯 보인다. 나아가 창작자 스스로의 내면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 영화 또한 많아졌다. 한편, 전통적인 예술영화 서사 대신 장르적인 내러티브 전략을 추구하는 영화 또한 부쩍 늘었다. 생존전략에 따른 것인지 취향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러한 형식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도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한국경쟁 본선에 오른 9편은 변화의 파고 속에서도 자신의 진실을 잃지 않으려 한 영화들이며, 주어진 현실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려 한 작품들이다. 이는 또한 팬데믹 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가족을 다루는 영화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이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녀는 시장에서 젓갈 장사로 일하는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소녀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학교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럴수록 부모의 존재는 더욱 큰 콤플렉스가 된다. 부모에 관한 거듭되는 거짓말과 글짓기에 수반되는 진실성이 충돌하면서 소녀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3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던 주인공 문승아의 연기가 또 다시 환한 빛을 낸다. 또 다른 가족영화인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갑자기 사라진 가수 윤시내를 찾아 헤매는 모녀의 이야기다. 항상 윤시내만 생각하며 모창까지 하는 가수 엄마와 가까운 사람까지 몰카로 찍어 조회 수를 올리는 ‘관종’ 딸은 사라진 스타를 찾아내기 위해 갖은 난관을 겪고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엄마 역을 맡은 오민애의 폭넓은 연기가 인상적이다.

가족 이야기는 여성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은 N번방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듯 보이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영상 유출로 고통받는 딸과 그 딸을 바라보는 엄마다. 제목이 함의하듯 이야기의 중심은 엄마 쪽에 조금 더 쏠려 있다. 딸이 겪은 사건을 파악하고 딸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엄마는 서서히 진정한 ‘엄마의 자리’를 깨닫게 되고, 결국 가족은 새롭게 정립된다. 정지혜 감독의 <정순>은 동영상 유출 사건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경아의 딸>과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의 구도와 주인공의 상황은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 정순은 엄마이자 중년 여성 공장 노동자다. <정순>은 가족에 대한 담론보다는 사건의 당사자인 정순의 표정과 몸짓에 포커스를 맞춰 인간적 수모와 모멸을 홀로 감당하던 한 여성의 결단을 힘 있게 묘사한다. 그동안 조연을 주로 맡았던 김금순이 주인공 정순을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최정문 감독의 <내가 누워있을 때>는 우연하게 길에서 ‘조난’된 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촌 자매 관계와 모든 것을 안다고 여겼던 친구 관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알량한 실체를 드러내지만, 이는 진정한 연대의 시작이 된다.

이완민 감독의 <사랑의 고고학>은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한 여성이 보여주는 특이한 사랑 이야기다. 고고학자인 여성이 8년 전 한 남자와 나눴던 사랑 이야기와 여전히 이 남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여성이 새로운 사랑을 꾸려가려는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유물을 보고서야 본질을 파악하는 고고학도답게 여성은 현재형의 사랑과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홍용호 감독의 <폭로>는 겉으로는 법정 스릴러 장르의 모양새를 드러내지만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는 속내를 가진 영화다.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여성과 그의 무죄를 밝히려는 변호사, 유산을 노리는 남편의 가족이 뒤얽히는 차가운 법정 드라마가 한 축이라면 숨은 채 여성을 돕는 어떤 존재를 중심으로 한 뜨거운 멜로드라마가 다른 축을 이룬다.

임상수 감독의 <파로호>는 한 남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심리 스릴러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수발하면서 모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남성은 걸핏하면 초인종을 눌러 자신을 호출하는 어머니와 그를 깔보는 모텔 바깥의 사람들 때문에 커다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영화는 남성의 환영인지, 실제 사건인지 구분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섬뜩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파로호’라는 거대한 알레고리 안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예년과 달리 다큐멘터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부족했던 올해, 홍다예 감독의 <잠자리 구하기>는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홍 감독은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의 의미를 간절하게 묻고 또 묻는다. 입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지워가는 게 싫어 고등학생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었던 감독의 고민은 재수를 거쳐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지속된다. 물에 빠져 허덕이는 잠자리 같은 자신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이 영화 안에 가득하다.

글_문석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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