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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코리안시네마에서는 신수원 감독의 최신작 <오마주>를 중심 삼아 한국 여성 감독의 삶에 관해 논하는 소규모 특별전을 기획했다. ‘오마주: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이라 이름 붙여진 이 특별전에서는 모두 4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흥미진진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보따리 또한 함께 풀려나올 것이다.

이 특별전의 실마리에 해당하는 <오마주>는 여성 영화감독 지완의 이야기다. 힘들게 만든 신작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자 지완은 낙담한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지만 일은 더디고 주변 반응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자료원으로부터 1960년대 활동한 한 여성 감독의 영화 <여판사> 사운드 복원 작업을 맡게 되고, 부족한 자료를 메우기 위해 직접 길을 나서 영화의 흔적을 좇다 여성 감독의 삶을 만나게 된다. 이정은의 생활감 짙은 연기가 힘든 상황에서도 낙관성을 잃지 않는 지완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신수원 감독의 데뷔작 <레인보우>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완이라는 여성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다. 많은 사람들이 알 듯 이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오마주>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지완의 과거사를 담은 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여자만세>는 신수원 감독이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시리즈 「타임」의 한 챕터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에 출연한 여성 로커에게 카메라를 빌려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게 하기도 하고, 부산에 사는 한 가정주부의 용감한 영화 만들기 작업을 보여주기도 한다. 후반부는 <여판사> 등을 만든 한국영화 두 번째 여성감독, 홍은원에 관한 이야기다. 신수원 감독은 홍 감독이 살았던 자택과 당시 홍 감독의 영화를 편집한 여성 편집기사 김영희도 만나는데, 이 이야기는 <오마주>에서도 극화돼 보여진다.

특별전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다. 1961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황윤석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이 영화는 실화와는 다른 궤적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남성의 사회적 지배력이 압도적이던 1960년대 초반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한국 두 번째 여성감독이 그린 한국 최초 여성 판사 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여판사>는 특별전의 고리로서는 마지막에 해당하지만, 사실 이번 특별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구적인 영화가 결국 오늘날 한국 여성 감독과 여성영화의 역사를 일궈낸 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판사> <여자만세> <레인보우> <오마주>, 이 4편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4편을 모두 독파한다면 이들 사이의 흥미로운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한국 여성 감독의 삶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것이다.

글_문석 프로그래머

올해 코리안시네마에는 가족영화를 여러 편 배치했다. 한국경쟁 부문에서도 설명했듯 올해 유난히 가족을 다룬 영화가 많은 탓도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3년 만에 극장 중심으로 열리는 영화제라는 점을 고려해 보다 많은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한 이유도 있다. 관객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작을 다수 포진시킨 점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다.

심미희 감독의 <그대라는기억>과 이창열 감독의 <그대 어이가리>는 각각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두 영화는 치매인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노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대라는기억> 속 남편은 아내를 돌보던 중 자신이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아내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이 여행길은 오랜 세월 함께했던 부부의 지난 여정의 축약이자 마지막 동행에 해당한다. <그대 어이가리>의 남편은 판소리 전문가로, 어느 날 치매를 앓기 시작한 아내를 돌보며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슬픔은 애절한 판소리 곡절로 영화 안에 수놓아진다. 남편의 고뇌가 깊을수록 곡조는 더욱 애달파진다.

이순성 감독의 <룸 쉐어링>은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삶을 함께하면서 관계가 이어지는 ‘유사 가족’을 다루는 영화다. 주인공은 주택을 소유한 할머니로, 그는 적은 돈을 받고 대학생에게 방을 주는 지역 자치단체의 ‘룸 쉐어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하지만 깐깐한 성격의 할머니와 대학생은 여러 충돌을 빚게 되며, 이 가운데서 서로를 아주 조금씩 알아간다. 조금 전형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주연 나문희의 원숙한 연기가 영화에 올록볼록한 재미를 불어넣는다. 차봉주 감독의 <안녕하세요>는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를 맺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살을 시도하다 이곳에 오게 된 젊은 여성의 시선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가려는 환자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화자에 해당하는 김환희(<곡성>)를 비롯해 이순재, 유선, 이윤지, 송재림 등 익숙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한국영화계 중견 감독인 김경형, 조진규, 정흥순, 박영훈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나의 사람아> 또한 가족 또는 유사 가족의 이야기를 묶어놓았다. 삶의 빛과 어둠이 동시에 드리워진 사연을 공유한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 아버지가 사망한 줄 모르는 한 소녀의 전화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맞는 약사의 이야기, 펜션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딸이 빚어내는 역설의 드라마,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진정한 영웅이 되는 소년의 이야기 등 기묘하게 얽히는 운명의 수레바퀴와 인생의 반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방은진, 오지호, 서준영, 박준규, 옥지영, 한수연 등 화려한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반면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조금 특별한 프로젝트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옴니버스 챌린지’라는 공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로, “사회의 약자인 ‘을’이 그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병’과 ‘정’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풍경을 통해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통찰하는 풍자 코미디” 6편을 담았다. 김소형 감독의 <하리보>, 박동훈 감독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최하나 감독의 <진정성 실천편>, 송현주 감독의 <손에 손잡고>, 한인미 감독의 <새로운 마음> 등 10분 남짓한 단편영화가 함께 묶여 상영된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널리 알려진 감독들도 컴백한다. 2019년 <파도를 걷는 소년>으로 시작해 매년 전주를 찾았던 최창환 감독은 올해도 <여섯 개의 밤>을 내놓았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했지만 엔진 고장으로 부산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세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해 전주 상영작 <식물카페, 온정>과 유사하게, 하나의 커다란 설정 안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담은 이 영화는 우연한 ‘착륙’이 빚어내는 삶의 균열과 봉합을 보여준다. 한국 독립영화계 대표 배우인 강길우, 변중희, 강진아, 김시은 등이 빚어내는 연기 앙상블이 우아하다. 2015년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2018년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선보였던 박순리(박영임) 감독도 <섬.망(望)>으로 오랜만에 전주에 돌아왔다. <섬.망(望)>은 코리안시네마 상영작 중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다. 고독한 삶을 살아가다 그 끝을 맞이하는 한 여성을 묘사하는 이 영화는 인상적인 영상과 미니멀한 음악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성의 기억과 꿈, 그리고 판타지 속에서 깊은 슬픔과 고통이 스며 나오는 듯하다.

앞서 소개한 <그대라는기억>을 비롯해 올해 코리안시네마 부문에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는 3편이다. 박홍열, 황다은 감독의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성미산 마을’로 불리는 성산동 지역의 방과후 학교인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일하던 교사 혹은 돌봄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교육 공동체 활동으로 유명한 이 마을에서 60여 명의 아이를 돌보던 다섯 교사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교사들의 부담은 커진 반면, 여건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10년을 일했어도 이들은 이곳 밖에서 교사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사들의 나날을 묵묵히 쫓는 섬세한 다큐멘터리다. 전후석 감독의 <초선>은 미국 하고도 정치판을 무대로 삼는다. <헤로니모>(2019)를 통해 쿠바 혁명 주역 중 하나였던 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 감독은 이 영화에서 2020년 미국 의회(상하원) 선거에 출마한 재미 한국인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LA 한인타운에서 출마한 데이비드 킴을 비롯한 이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뉘었지만 재미동포에 대한 법적 보호를 내세우는 것은 공통적이다. 미국 정치계에 재미 한국인이 다수 진출한 것에 기뻐하기보다는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진보적 어젠다를 내세우고도 한인타운에서 떨어진 데이비드 킴 후보의 현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 코리안시네마 단편 부문도 주목할 만하다. 눈에 익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극영화부터 창의적인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성향의 단편영화 14편이 관객의 관심을 기다린다.

글_문석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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